로키마운틴의 여행

국사대폭 초등 20주년 등반

로키마운틴 2009. 2. 20. 13:28

토왕성 빙벽대회 참관하고자 설악산에 갔는데......

후배들의 국사대폭 등반 계획이 있어 후배들의 등반을 조금 지켜보고 토왕폭으로 갔습니다.

 

1989년 2월 7일 저희 청악산우회 조금석, 김운회 회원이 국사대폭을 초등하였습니다.

한겨울 2~3 개월을 설악산에서 등반하며 지내던 시절이였기에 

당시엔 별 의미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빙촉이기에 등반을 했을 뿐이였는데....

그것이 초등이였습니다. 물론 다른 빙폭보다는 어려운 등반이였죠.

 

소토왕골에는 두개의 폭포가 있습니다.

하나는 권금성에서 안락암 아래로 떨어지는 높이 100여m의 폭포이고

또 하나는 계곡 중간에 있는 50여m의 폭포입니다.

초등당시에는 폭포이름을 몰라서 권금성에서 떨어지는 높은 폭포를 소토왕폭포라했고 

계곡중간의 작은 폭포는 무명이라 두줄폭[가뭄시 두줄기로 결빙]이라 명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에 권금성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국사대 폭포"라는 것을 알았고

이어 소토왕골 계곡의 폭포가 소토왕폭이란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때부터 폭포 이름을 바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당시 저는 귀가해야 했기에 멀리서 후배들의 등반을 잠시 바라보고 돌아섰습니다.

그땐 주말에 설악산에서 서울 오려면 최하 6시간이 소요되었고

양평, 양수리에서 정체되면 양평에서 만도 3~4시간이 소요되어 8~10시간씩 걸렸죠. ^&^

 

1988년 12월 25일 우연히 찾아간 소승폭포를 등반하고나니 그 또한 초등이였기에....

연이어 두곳의 빙폭을 초등하게 되었습니다.

소승폭 초등 20주년 등반은 모 산악잡지의 취재로 후배 전양준이 선배들의 등반을 이었습니다.

 

소승폭이나 국사대 폭이나 요즘의 장비로는 별 어려운 빙폭이 아니지만

당시의 장비로서는 등반자의 기술이나 과감성, 경험이 필요한 빙폭이였죠.

소승폭과 국사대폭은 갑작스런 빙질의 약화로 지금도 위험성은 다른 빙폭에 비해 높은편이죠.

 

멀리서 바라 본 국사대폭[왼쪽의 노적봉과 오른쪽에 권금성이 보입니다]

 

조금 가까이 본 국사대폭[왼쪽 계곡에 소토왕폭이 보입니다]

 

폭포 아래 도착하여 등반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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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자 금석이의 선등으로 등반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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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실력은 예나 지금이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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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높은 첫 구간 60여m를 거의 다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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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등자 확보를 봅니다. 두번째 등반자는 혁민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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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좋아졌습니다.

금석이에게 전화해서 빙폭 가운데로 오라고합니다.

등반자도 가능한 가운데로 등반하라고 주문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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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민이도 중간 크럭스 부분[수직 고드름]을 넘어섰습니다.

 

KIM_0957.jpg

이제 이후등반은 시간이 말해줄 뿐 위험은 없습니다. 

 

카메라를 접고 토왕폭으로 이동합니다.